순간이 움직인다  외1편

김규화

바람이 불면 순간이 움직인다

바람이 여러 번 불면 순간이 순간으로 이어지고

끝없는 실이 되어 밤하늘로 날아간다

하얀 살갗이 검어지고

검은 머리가 희어진다

숨가쁘고 찡그린 얼굴이 금세 다가오고

숨고르며 웃는 얼굴이 금세 사라진다

실바람이 순간에 머물고

설악산 흔들바위는 숨죽인 채 엎드려 있다

바람을 많이 맞으면 바람맞은 병신이 된다

흔들바위 얼굴에 이끼를 피운다

멍멍이가 바위를 흔적도 없이 밟고 간다

발맞추는 시간이 많아지면 숨막히는 나의 탱고

다마스크 물결에 맞추어 춤을 추는

동학농민운동의 들녘에 피는 꽃

-몸을 내놓고 찾는 것은/몸보다 더한 몸/몸밖에 없는 몸

몸 하나 드러내 놓는다

몸에는 올망졸망한 자식들과

자식들을 기르는 아내가 딸려 있다

몸이 황토현(黃土縣)에 우뚝우뚝 서서

이쪽으로 바쁘게 기는 개미 떼

저쪽으로 앵앵거리는 애기벌 떼

몸 하나 가지고 쇠스랑 휘두르다가는

들녘에 누워 하늘을 보며

몸말을 하려고 눈뜨고 있다

몸 하나 땅에 엎드려 모로눕다가는

오랜 잠 속에 빠져버렸다

임란의 농군들이 하늘에서 차곡차곡 내려와

긴 물총을 뿌리며 아프지 말라고 속삭인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무장한 로봇들이

너무 늦었다, 말하고

새빨간 저녁노을 속으로 풍덩풍덩 빠진다

몸 대신 몸 둘 곳이 없어

농민의 벌판에 몸꽃이 활짝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