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하는 말을 듣고 싶은 순간의 중얼거림들

―인생을 건너가는 몇 가지 방법에 대하여

김 륭 < 시 인 >

우리가 맞이할 ‘어느 멋진 아침’이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통해 무언가를 구하는 것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삶이지만 나를 놓지 않는 이상 

나는 슬프거나 절망적이지 않다.”

신형철 평론가가 최근 출간한 시화(詩話) 『인생의 역사』(신형철, 주)난다. 2022. 10. 31) 책머리에 올려둔 첫 문장부터 읽습니다. “‘인생’은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말이다.” 그렇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문장인데 특별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는 덧붙입니다. “사전에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혹은 그 기간이라는 특별하지 않은 뜻 말고도 어떤 사람과 그의 삶 모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특별한 뜻이 적혀있다. 이런 예문과 함께. 인생이 불쌍해서 살려준다. 그러니까 인생은 ‘살려줘야 할 정도로’ 불쌍한 것이다. 왜 그런가.”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뭔가 좀 많이 ‘이상하고 흥미롭지’ 않습니까? 체호프(“체호프는 수수께끼로 시작할 뿐만 아니라 수수께끼로 끝낸다고, 인생의 질문들 앞에서 ‘난 모른다’라고 중얼거릴 따름이라고”-제임스 우드)와 입센의 작품을 거론하며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인생은 이해할 수 없어서 불쌍한 것이다. 문제를 푸는 사람 자신이 문제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 수가 없는데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풀어야 하니까 더 불쌍한 것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이 같은 의견에 아마도 격렬하게 공감하는 분들이 계실 테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든 맞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생의 역사』란 제목에 걸맞게 “‘인생’은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말이다.”라는 전제를 내세운 그는 이어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라고 말합니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는 밑줄을 그을 수밖에 없는 문장 앞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는 행(行)과 연(聯)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行) 아래로 쌓여가는(聯)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그가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메리 올리버’를 인용한 것은 적확하게 보입니다. “시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빈 바구니예요. 당신의 인생을 거기 집어넣고 그로부터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죠.”(메리 올리버)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헬스장에 간 임지은 시인이 회원카드의 직업난에 시인이라고 적는 트레이너를 보고 속으로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 ‘상태’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인생의 질문들 앞에서 대부분의 우리는 그저 ‘난 모른다’고 중얼거릴 따름입니다. 시인들이 시를 쓸 때 나는 모른다는 전제로부터 시작하듯, 그렇게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신형철 평론가는 이 책이 나오기 전부터 꽤나 멋진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 적이 있습니다. 

# 인간은 (           ) 인생은 (            )

괄호 속의 형용사는 변변찮은 제 강연을 듣는 모든 분들의 머리나 심장 속에 넣어두기로 합니다. 이성복 시인의 말처럼 인생이란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인생이 뭐냐고 질문하는 게 우리가 말하고 우리가 사는 인생이니까요. 그럼 이쯤에서 최근에 본 영화 이야기는 어떨까 싶습니다. 지난 10월 12일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독창적인 상상력과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아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오픈시네마에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3월 고작 10개 상영관에서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한 달 만에 개봉관이 3천 개로 늘었고 14주 연속 박스오피스 톱10에 들어 미국 독립예술영화의 명가 A24의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됐습니다. 멀티버스를 다루면서 손가락이 핫도그로 변하거나 돌이 되는 등 상상 이상의 ‘미친’(?) 전개가 그 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Part1. Everything

미국으로 이민 와서 빨래방을 운영하며 사는 에블린(양자경)에게 닥친 위기로부터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 뭐하나 잘난 게 없는 남편(키 후이 콴)은 이혼 서류를 내밀고, 하나뿐인 딸(스테파니 수)은 레즈비언으로 백인여성과 사귀는 중입니다. 중국에서 온 아버지는 아침밥을 빨리 주지 않는다고 아이처럼 칭얼대고, 국세청 조사관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는 증빙서류가 이상하다며 빨래방을 압류하겠다며 협박을 일삼습니다. 그 와중에 빨래방에서는 이용자들의 불평과 말썽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국세청으로 조사를 받으러 간 에블린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다른 평행우주에서 온 전사로 바뀐 남편으로부터 이상한 얘기를 듣습니다. 조부 투파키라는 빌런 때문에 멀티버스의 안정이 무너지기 직전인데, 이걸 막을 사람이 바로 에블린 자신이라는 겁니다. 이때부터 영화는 두 시간 삼십분 가까이를 미친 듯이 멀티버스를 넘나들며(in the multiverse of madness) 질주합니다. 끝도 없는 멀티버스로 ‘버스점프’를 하는 에블린은 아버지가 반대하던 남편과 결혼해 중국을 떠나던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고, 어린 딸과 행복하게 살았던 세계를 보기도 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화려한 은막의 스타가 된 자신이 살고 있는 멀티버스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Part2. Everywhere에 있습니다. 메마른 땅 절벽 위에 바위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엄마 에블린이고 하나는 딸 조이입니다. 스크린 속의 정적이 관람석으로까지 흘러내립니다. 이 평행우주에서는 두 사람이 무생물로 존재한다는 발상이 이상하고 흥미롭습니다. 그러니까 더없이 시적(詩的)입니다. 이 장면에서 눈 달린 바위가 된 엄마 에블린과 딸 조이는 자막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에블린 바위    모든 걸 망쳐 놔서 미안해

조이 바위     여기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그냥 바위가 되는 거야

에블린 바위    내가 바보처럼 느껴져.

조이 바위     새로운 발견을 할 때마다 알게 돼. 우리는 모두 작고 어리석다는 것을. 그게 인간이야. 

“그게 인간이야.”라고 말하는 조이 바위의 말에 얼마나 공감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의 삶, 현재는 과거의 어떤 지점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또 어떤 기준의 소망과 견주어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갖게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대상이나 시점과 무관하게 비교가 되는 순간 좋은 시기와 나쁜 시기라는 흑백의 판단 속에 갇히게 된다는 상투적인 의미만은 아닙니다. 이런 측면에서 앞에서 언급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영화 ‘미아 한센 로브’ 감독의 영화 ‘어느 멋진 아침’(2022)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미아 한센 러브’의 작품 속에서는 언제나 문학과 고전에 대해 그녀 자신이 갖고 있는 존경과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태도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의 소설 「세월」에 놓인 문장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무언가를 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고백컨대 지금 우리의 삶은 불완전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완전한 것들은 불안정하고 불안합니다. 그것이 어떤 이유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에 비친 우리의 존재는 전면에 내세워지거나 두드러지지 못합니다. 언제나 누군가의 그늘, 누군가의 감정 아래에 바위처럼 놓이게 된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한사코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인들이 쓰고 독자들이 읽는 대부분의 시(詩)가 태어나고 사랑이 탄생하는 지점입니다. 어떤 의미와 어떤 긴장이 뒤엉킨 시공간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전문(김남주 옮김,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남풍, 1988)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삶인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필요하다니. 나는 그를 위해 언제 어디서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무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침저녁으로 되새겨야 합니다. 브레히트가 쓰고 김남주가 번역한 이 작품은 민주화를 위해 사람들이 제 목숨을 던지거나 미래를 포기하며 싸우던 시대에 읽혔습니다.(신형철) 이후 그런 시대를 지나 지금은 강렬한 연애시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 편의 멋진 시는 제각기 읽는 사람들의 정서적 울림을 가로질러 시대를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단 시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르한 파묵’의 말을 인용하자면 당신 주머니나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는 것은, 특히 불행한 시기에,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다른 세계를 넣고 다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게 문학은 약처럼 필요한 존재입니다. 수저나 주사로 투여하는 약처럼 매일 복용해야 하는 문학은 마약 중독자처럼 어떤 특성과 의미 있는 일정한 농도가 있습니다. 먼저 약이 좋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좋다는 건 진정성과 힘이라는 의미입니다.”(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6, 14p) 물론 ‘오르한 파묵’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제가 앞에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언급한 것은 불확실한 삶을 대하는 태도를 오르한 파묵의 문장을 통해 실감나게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어쩌면 문학이 아니라, 방에서 홀로 상상을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상상 속에서 모든 것은 흥미롭고 매력적이며 현실적으로 변합니다. 익히 알고 있는 이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기 시작하는 거죠. 이렇게 해서 주제의 중심부에 도달합니다. 잘 쓰기 위해서는 제대로 지루해져야 하며, 제대로 지루해지기 위해서는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루했던 장소에서 본 것들을 감각적으로 바꾸는 것, 무책임하게 즐기는 것, 아이들에 대해 흔히 말하듯 즐길 때도 무언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글쓰기의 가장 멋진 부분은 아이처럼 세상을 잊는 것, 마음껏 놀고 즐기면서 자신을 무책임하게 느끼는 것, 익숙한 세계의 규칙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것, 그리고 이런 것들을 할 때도 이성 한구석에서는 이 순진하고 자유로운 축제 뒤에서, 나중에 독자들을 전적으로 매이게 할 심오한 책임의 존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루 종일 놀이를 하겠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다른 이들보다 진지하다는 것을 느낄 겁니다. 삶의 정수를, 그것과 맞부딪칠 힘을 오로지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여길 겁니다.”(22p)

지극히 상투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일상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도 우리는 여행을 하기도 하며 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고독이나 침묵 혹은 비밀로 인해 사람들과 단절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동들, 이 모든 존재 양태들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표면적인 목적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들을 분석해보면 일상생활로부터 삶의 결(스타일) 자체로 넘어가는, 나아가 문학을 포함한 예술작품에까지 다다르게 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시공간이 드러납니다. 물론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들에 심미적인 것이든 존재론적인 것이든 어떤 의미나 긴장을 부여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거니와 우리가 가진 일상이란 게 워낙 긴장의 반대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조금 배웠다

밤에 혼자 있는 사과에 불 밝혀주는 방법

겨우 잠든 사과를 깨우지 않고 불을 꺼주는 방법

- 이 원, 「 □ 」 전문

궁금해

사람들이 자신의 끔찍함을

어떻게 견디는지

자기만 알고 있는 죄의 목록을

어떻게 지우는지

하루의 절반을 자고 일어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흰색에 흰색을 덧칠

누가 더 두꺼운 흰색을 갖게 될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은

어떻게 울까

나는 멈춰서 나쁜 꿈만 꾼다

어제 만났던 사람을 그대로 만나고

어제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징그럽고

다정한 인사

희고 희다

우리가 주고받은 것은 대체 무엇일까

- 안미옥, 「캔들」 전문

이원의 「 □ 」은 아이들이 읽어도 될 만큼 짧고 쉬운 시 같아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작품입니다. 먼저 제목으로 놓인 □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도형의 정사각형 혹은 한자의 입 구? 안미옥의 「캔들」 또한 시공부를 하지 않은 독자라면 난감할 수도 있겠습니다. 창작자 입장에서 보면 태생이 다른(?) 두 편의 시를 이 자리에서 인용한 것은 이 글의 주제인 삶의 태도와 관련, 뛰어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독자로 하여금 이건 내가 말할 참이었는데, 하지만 난 그렇게 순수하지 못했어, 하고 말하게 만드는 재주라는 ‘오르한 파묵’의 말을 실감나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참 미묘하고 그걸 글로 옮기는 일은 늘 실험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시편입니다. 

이렇듯 모든 시는 모두 다르게 태어납니다. 언제 어디서든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막 태어난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시는 필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우연(생의 새로운 범주 혹은 미지의 세계)으로 만들어낸 영혼(마음)의 양식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다시 만들어가는 일이며,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갖는 일입니다. 이쯤 되면 인생을 건너가는 몇 가지 방법 중 시를 가장 앞자리에 놓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원의 「 □ 」를 두고 2연 3행에 불과한 짧은 시편이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안미옥의 「캔들」을 두고는 이맛살을 찌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행여 지금까지 시를 그저 시인이 놓은 글자만 읽고 이해하려고만 한 건 아닌지 생각해보는 건 어떨는지요. 시가 태어나는 순간은 어떤 의미가 생산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소연 시인이 2019년 펴낸 산문집을 통해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시를 가르치다 보면, 가르쳐서는 안 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과 가르침 자체가 불가능한 걸 가르치려 든다는 생각 때문에, 이 밥벌이를 어쩌면 좋은가 싶을 때가 태반이다.”(김소연, 『나를 뺀 세상의 전부』, 마음의숲, 2019) 그리고 “시인은 가장 안 보이는 걸 쓰는 자임을 다시 기억하며 살고 싶다.”고 말입니다. 쓰는 자는 보는 자입니다. 쓰는 일은 당연한 일을 ‘당연하지 않은 눈’으로 보는 일입니다.

아기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잘 웃고 잘 울고 속마음을 쉽게 드러냈다

아기를 정성껏 돌보았다

아기는 금세 죽어버릴 것처럼 약하다가도

어느 밤에 비친 얼굴엔

절대로 죽지 않을 것 같은 끈기가 있었다

아기를 돌보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종종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쉽게 까먹었다

카페 가기

책 읽기

오늘 저녁에 먹을 밀푀유나베 재료를 구입하기

일기를 쓰면

나는 자꾸 아기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부드러운 아기 냄새가 났다

평화로웠다

나는 정류장에 앉아 아기 돌보기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방에는 아기가 담겨 있었다

아기가 어디에서 왔을지 생각하지 않았다

아기는 내 생각을 전부 들여다볼 수 있는 것 같았다

검은 눈동자로 나를 꿰뚫었다

가방 속의 아기를 위해 기도했다

모은 두 손이 자꾸 희미해졌다

진심이 아닌 것처럼

아기가 잠들고 깨는 아침마다

나는 나를 돌봐줄 언어를 잃어갔다

이미 아기를 여러 번 죽인 것 같았다

그러나 눈을 떠보면

귀엽고 순진한 아기가

또다시 내 품 안에서 웃고 있고

나는 내 아기인 것처럼

아기를 돌보았다

무럭무럭 자라서 나를 이길 수 있도록

등을 토닥였다

-김상희, 「아기 돌보기」전문

2022년 『창작과비평』 신인상 시 부문 당선작 가운데 한 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이원 시인의 「 □ 」을 제대로 읽어내셨다면 별 무리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작품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 모든 말을 다 배운 이들이지만, 그럼에도 왜 이해할 수 없고 설득할 수 없고 설득당할 수도 없는 걸까요. 아마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는 순간들을 체험하지 못한 탓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입이 아니라 심장이 하는 말은 알아듣지 못하거나 알아듣지 않으려는 것은 아닐까요. 신예 김상희가 갓 스물을 넘긴 나이로 자기만의 코드로 상징적 체계를 구축, 자기만의 상상적 세계를 이처럼 정확한 언어로 담아낼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재능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도중도 위험하고, 뒤돌아보는 것도 위험하고, 덜덜 떨며 멈춰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인간이 다리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의 사랑할 만한 점은, 인간이 건너감이고 몰락이라는 데 있다. 나는 오로지 몰락하는 자로서만 살아가는 이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저편으로 건너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읽으신 분들이 대부분일 텐데 어떤지요? 그리고 당신에게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을 하려는지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는 수식어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법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법이 아니고서는 이럴 수 없거나 저럴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너무 많습니다. 해서,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내가 나에게 행복한 사람임을 말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니 에르노’는 1974년 출간한 그의 데뷔작 ‘빈 옷장’을 통해 일상에서 마주하는 폭력(자신에게 일어난 일임에도)을 지극히 담담한 어조로 풀어냅니다. 사전 정보 없이 마주한다면 다소 충격을 받을 만한 자신의 낙태 이야기임에도 불구, 낙태 전문 산파와 형식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스무 살의 삶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내가 피하려 했거나 혹은 의도치 않게 잊어버렸던 그 말들이 사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처음의 것, 진짜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학교, 책 속의 단어들은 이제 아무 소용 없다. 그것은 증발한 말들이며, 눈속임이며, 쓰레기들일 뿐이다.”)

첫 평론집 『언더스토리』와 『엔딩 독서노트』 펴낸 평론가 박혜진은 “내게 있어 문학은 적은 빛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을 환대하는 집”이라고 썼습니다. 문학이 특히 시가 삶의 고단한 틈새를 비추는 빛이라면, ‘언더스토리’(하층식생 혹은 하목층을 가리키는 말로 숲 지붕과 숲 바닥 사이에 사는 생물을 뜻하는 산림학 용어)를 문학의 영토로 규정하는 그의 시각은 조금 어둡지만 적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믿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믿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가진 각자의 삶은 그것이 언젠가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고. 우리가 가진 사랑은 여전히 우리 안에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고백컨대 나는 형편없는 글을 쓰면서 나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형편없는 세계일지는 모르지만 결코 부끄럽지는 않은 세계입니다. 그것은 ‘여기는 나의 세계’이며,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입니다. 모든 당신은 무엇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것인지 지금부터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문득 그 어떤 말로도 다할 수 없는 ‘어느 멋진 아침’에 도달해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아무리 불안하고 불완전한 시간에도 아침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